전시

Exhibition

9월의 전시

9월의 전시

청담동에 위치한 CAAG 갤러리는 2023년 8월 31일부터 10월 1일까지 서윤희 작가의 개인전 < MEMORY GAP_SIMIRU > 전을 개최 한다.

 

 

 

● 서윤희의 MEMORY GAP (기억의 간격)

 

 

밤하늘의 별로 상징되는 총체적 자연의 모든 시간을 화폭에 담는 작가 서윤희((徐侖熙, 1968-)

20여년 이상 기억을 새로운 시공간에 새기는 <기억의 간격> 테마로 각 지역의 환경과 자연을 이용하여 인간 삶의 본질을 성찰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서윤희작가가 만들어내는 회화의 과정은 작가 사유의 공간이며 동시에 삶의 흔적을 표현한 시간의 결과물이다. 작가의 회화는 주로 공간감이 있는 추상적인 배경과 작가의 실제 경험과 관련된 작은 인물들로 꼼꼼하게 묘사되어져 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세계에 과거의 인물을 그려 넣어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뒤섞음으로써 본래의 기억과의 틈을 만든다. 그 틈에 안식을 염원하는 메시지를 담는다.

자연물, 자신의 신체, 시간의 흐름 등을 화면에 투영시키는 지난한 행위는 자신 그리고 자신과 연결된 세상을 치유하기 위한 필연적 행위이다. 자연이 인간을 치유할 수 있기에 기억 속 그리움이나 상처를 작품 속 흔적으로 녹여내어 기억을 정화시키고 새로운 기억들로 재탄생시키는 일련의 과정을 시각화한다.

 

 

● MEMORY GAP _SIMIRU (기억의 간격_시미루(스며들다))

 

 

 

2023년 갤러리 CAAG에서 선보이는 작가 서윤희의 <MEMORY GAP_SIMIRU>는 20여 년간 표현해 온<MEMORY GAP>의 연작이다, 자연의 시간과 삶의 시간이 중첩되는 변화와 흐름속에서 오랜시간 동안 스며들며 이루어지는 그의 작품이 영상과 함께 펼쳐진다.

 

작가는 모든 삶의 기억, 오래되었거나 중첩되며 변형된 기억, 오늘의 기억까지를, 대상을 포용하고 흡수하는 자연물 염료를 사용하여 종이나 천에 스며드는 얼룩과 번짐을 통해 오래된 기억과 삶의 시간이 중첩되는 시간성 속에서, 재탄생하는 시간과 공간으로의 스며듬을 표현했다. <MEMORY GAP_SIMIRU>는 작가 자신과 작가와 연결된 세상을 치유하기 위한 필연적인 사유와 치유의 과정들이다. 이것은 인간의 삶에 대한 본질을 성찰하는 과정이며, 삶의 흔적을 표현한 시간의 결과물인 것이다.

 

갤러리 CAAG <MEMORY GAP_SIMIRU> 에서 각자의 기억과 삶의 시간성 공간을 상상하고 찾아내 사유하는 시간을 만나게 되길 바란다.

 

 

●갤러리 CAAG 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다양한 매체들이 한공간을 사용함으로써 새로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공간입니다 복합문화공간 갤러리 CAAG 서로 다른 공간주체들이 만나서 고객들에게 다양한 주제와 융복합의 편리함을 제공하기 위하여 만들어 졌으며 어떤 경계선을 허물기 위함이 목적입니다 갤러리 CAAG는 항상 고객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문턱이 낮은 갤러리로 항시 누군가는 그림을 관람할수 있는 곳이 되어 작가와 관객의 거리감을 줄일수도 있는 서로에게 친근한 공간으로 다가옵니다 정적인 듯 하지만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서윤희 작가의 작품과 시끌시끌한 이야기거리가 있는 복합문화공간에서 만남으로 어쩌면 서로가 같은 이야기를 한 시점, 한공간에 담아보고 싶었는데 작가가 잘 풀어내었다 생각합니다

 

 

 

 

 

 

초월의 시간과 기억의 간격: 서윤희 작가의 예술세계

이진명 – 미술비평 미학 동양학

 

서윤희(徐侖熙, 1968-) 작가의 회화세계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열린 비밀(the open secret)’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혹은 ‘열린 비의(open mystery)’라고 부를 수도 있다. 이 말은 원래 괴테 (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가 사용했던 말이다(offenes Geheimnis). 괴테는 “우리는 밤하늘에 빛나는 별을 기뻐할 수는 있을지언정 그 별빛을 욕망하지 않는다.”라고1) 말했다.

서윤희 작가는 밤하늘의 별로 상징되는 총체적 자연의 모든 시간을 화폭에 담는다. 자연 속에 인간의 욕망이 투여될 수 없다. 투여되어서는 안 된다. 자연의 시간은 사람의 시간과 다를 뿐만 아니라 존재의 목적도 다르기 때문이다. 자연은 끊임없이 낳고 낳을 뿐이다. 이를 “천지생물지심(天地生物之心)”이라 한다.

서윤희 작가는 자연의 위대한 마음을 화폭에 담는다. 그리고 이 마음으로부터 유리되어 무감각하게 살아가는 사람의 마음과 사람의 시간을 대비시킨다.

서윤희 작가가 해안을 돌며 바다와 이야기하고(면천을 바다에 적시고), 식물과 대화하며 식물의 존재의미를 생각하며(염료를 일정만큼 채취하고), 대지의 여신을 불러 이야기하여(흙을 얻어) 햇빛과 공기와 불과 물의 꿈을 화폭에 드러낸다. 완성한 한지나 면천의 표면에는 자연의 영원한 목적과 웅대한 의미가 녹아있다. 무려 천 년을 간다는 한지에 억겁의 시간이 녹아있다. 억겁의 시간뿐만 아니다. 우리의 인지능력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무수한 인연의 생멸과정이 함축되어 있다. 더욱이 지난하고 절실한 과정을 통해 얻은 위대한 자연의 이미지에 미약한 인간의 삶이 대비되어 묘사된다. 서윤희 작가의 작업은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니다.

대지의 여신의 얼굴을 그린 아주 정밀한 초상화인 동시에 억겁의 시간과 인연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위대한 추상회화이기도 하다.

인간은 자의식(self-consciousness)으로 세계와 자기를 본다. 자의식은 타인과 자기를 비교하는 의식이다. 사물의 가치와 쓰임새를 재는 의식이다. 외부를 바라보는 의식이다. 따라서 진정한 자아를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세계를 있는 그대로(as-it-is) 보지 못한다. 내가 진정으로 나를 볼 수 있으려면 자의식이 사라져야 한다. 자의식은 여러 경로나 사건의 계기로 작아지거나 달래지거나 사라질 수 있다. 이를 선사(禪師)들은 무아(無我)라고 부르고 장자(莊子)는 “오상아(吾喪我).”라고 불렀다. 무아를 서구신학으로 번역하면 엑스타시(ecstasy)가 된다. 엑스터시와 같은 말인 법열(法悅)의 시간은 나의 안목이 나의 내부로 향하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게되어 세상과 하나가 되는 통합(union) 속에서 솟아나게 된다. 이 특별한 시간 속에서 나의 눈은 도치된다. 이를 도치된 눈(reversed eyes)이라 부른다. 도치된 눈은 신의 눈과도 같다.

서윤희는 자연의 모든 요소, 대지와 물과 바람과 햇빛을 하나의 화면에 응축하여 신이 바라보는 세계를 상징한다. 신(God)과 세계(world), 초월(transcendence)과 내재(immanence)의 상호연관성을 드러낸다. 여기에 인간의 시간과 사건을 대조적으로 묘사한다. 아주 작게 묘사된 인간의 아주 작은 시간과 사건은 전체 화면과 극적으로 대비된다. 이 대비 속에서 우리는 왜소하며 미미한 존재임을 알게 된다. 즉, 우리는 여기서 절대적 부정(absolute negation)이 의미하는 바를 시적으로(poetically) 알게 된다. 서윤희 작가는 이렇듯 절실하고 돈독한 작업 기억의 간격 을 2006년부터 쉬지 않고 진행하고 있으며, 2023년 현재 우리를 놀랍게 해줄 새로운 프로젝트를 향해 웅대한 발걸음의 여정을 내딛고 있다.

 

이진명, 미술비평 미학 동양학

 

 

삶을 치유하는 제의적(祭儀的) 몸짓

 

2017년 OCI 미술관 중견작가 초대전 관련 서문

김 지 예 (OCI미술관 큐레이터)

 

누구에게나 삶의 순간들이 혼령처럼 부유하는 저마다의 기억의 공간이 있다. 뿌연 망각의 터널을 뚫고 그곳으로 돌아가는 일은 때론 애틋하고, 때론 아물지 않은 상처와 대면해야하는 아픈 과정이다. 서윤희는 기억의 공간 속 흩어지고 빛바랜 시간의 조각들을 꿰매고 다독여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낸다. 고운 수의를 입은 기억들은 작가가 만든 기억의 내세(來世)에서 자유로운 생명력을 얻는다.

 

서윤희는 기억이 생성되고 소멸되는 순환 구조를 독특한 방식의 회화 작업으로 탐구해왔다. 그는 근 10여 년 동안 한지 위의 추상적인 형상에 세밀한 인물을 그려 넣는 《기억의 간격》 연작에 매진해오면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다층적인 시․공간과 기억의 의미를 작품에 새겨왔다. 90년대 초반에는 먹의 농담만을 섬세하게 다룬 추상적인 회화와 콜라주에 집중하면서 전통 수묵화를 현대적인 방식으로 연구했다. 이때부터 한지에 먹이 스며들어 나타나는 다양한 얼룩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10여 년간은 해외에 거주하면서 작업의 공백기를 가졌는데, 이 시기의 여성으로서의 삶과 이방인으로서의 경험은 다시 붓을 들기 시작한 이래로 작품의 원천이 되었다. 작가는 2006년부터 기억을 소재로 자연물과 약재들을 끓인 천연 염료를 한지 위에 부어 흔적을 내는 것으로 대표되는 특유의 방식을 이어왔다.

OCI미술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 《기억의 간격: 畵苑》에서는 인간의 삶을 기억의 속성에 비추어 일관성 있게 성찰하면서, 작품 속에 시간의 지층을 쌓아온 중견작가 서윤희의 작업 세계를 총망라한다. 그동안의 전시에서는 다층적인 작업 과정 중에서 결과물인 회화를 위주로 선보여 왔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회화와 더불어 그 제작 현장을 기록적으로 담은 영상과 설치 에도 주목하여 그 의미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서윤희의 작업에서 회화가 여러 층의 시간을 한 화면에 응축한 것이라면, 영상과 설치는 시간이 중첩되는 변화와 흐름을 낱낱이 풀어놓은 것이다. 이는 회화로 남기 위한 과정이지만, 그 자체로 “사유의 과정”이라는 독립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사실 작가의 작품은 회화의 과정에서 자연물을 수집하고 우려서 염료를 만드는 등 작가의 ‘행위’ 자체에 중요한 의미가 있는 ’신체미술’이자 ‘퍼포먼스’이며, 특정 지역 자연의 흔적을 간직한 지표적(Index) 성격을 가진 ‘대지미술’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측면에서 동시대 미술의 광범위하고도 중요한 영역에 자리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주요 근작과 신작인 회화와 설치, 영상 작품의 시너지를 통해 작업의 다양한 면모를 선보인다. 전시장 1층에서는 다양한 색과 형상 속에 인물과 동물 등의 섬세한 이미지들을 더해 기억 속 이야기들을 표상한 회화들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불화를 현대적인 맥락에서 녹여낸 대형 신작을 비롯하여, 주요 초기작과 근작을 한 자리에 펼쳐서 회화의 경향과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한다. 이어 2층에서는 자연의 흔적을 간직한 강렬한 색감의 회화와 자연 속 작업 과정을 담은 영상이 연출된다. 특히 현장 퍼포먼스처럼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는 영상과 깊은 공간감과 추상성을 강조한 회화들은, 최근 작가가 관심을 갖고 새롭게 확장하고자 하는 경향을 반영한 이번 전시의 주요 작품들이다. 3층에서는 작가의 작업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영상, 설치 작품을 만나본다. 고행과도 같은 작업의 과정을 촬영한 영상과 자연물과 한지가 결합하여 변화하는 모습을 전시 기간에 지켜볼 수 있는 현장 설치는 관람객들이 작품과 보다 가깝게 호흡하도록 할 것이다.

기억을 현재의 삶 속에서 새롭게 비추어 보는 의미를 담고 있는 《기억의 간격》은 2006년부터 줄곧 서윤희의 작품과 전시의 제목이었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같은 맥락 안에서 ‘畵苑(화원)’ 이라는 부제를 더했다. 서윤희는 삶의 작은 순간들이 켜켜이 모여 있는 기억의 뜰을 오랜 시간 자신만의 색으로 가꾸어 왔는데, ‘畵苑’은 서윤희의 회화 속 깊고 넓은 성찰의 공간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더불어 각종 식물과 약재가 가장 중요한 모체가 되는 작품의 특성을 암시하는 것으로써, 마치 ‘花園(화원)’의 식물처럼, 작가의 무한한 사유의 터 안에서 변화하고 확장되는 기억의 조각들을 상기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작가의 회화는 주로 공간감이 있는 추상적인 배경과 꼼꼼하게 묘사된 작은 인물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인물들은 대부분 작가의 실제 경험과 관련된다. 그는 자신이 만든 세계에 과거의 인물들을 그려 넣어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뒤섞음으로써, 본래의 기억과의 틈을 만든다. 작품 속에서 기억은 망각되고 왜곡되기도 하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기억의 간격은 특히 서윤희의 작품 속에서 장소의 간격으로 분명하게 드러난다. 대부분 작품의 바탕에 활용되는 자연물들은 그가 수집하고 선택한 특정 지역의 재료로서, 기억 속의 장소와는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서윤희는 초기 작업에서 주로 홍차 티백과 먹을 이용해 한지에 다소 맑고 담백한 얼룩을 만들었고, 이후에는 다양한 꽃, 나뭇가지, 갖가지 한약재들을 소주에 담가 우려내거나 끓인 염료를 입자가 비교적 질긴 기계한지에 덧발라 그 형상과 결을 한층 풍부하게 표현해왔다. 사실 몇 가지의 대표적인 방식 이외에 자연 재료의 특성에 따라 각 작품의 제작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에, 작가는 언제나 연구를 거듭해야한다. 이러한 작업을 위해 작업실 한쪽에는 각종 재료들을 숙성시키는 조제실 같은 공간이 펼쳐져 있고, 은은한 약초의 향이 스며들어 있기도 하다. 자연물은 추상적이고 몽환적인 얼룩으로만 남기에 이미지만으로는 어떤 자연물을 어느 지역에서 가져와서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지에 명백히 특정 장소의 흔적을 남겼다는 점에서 작가의 작품은 지표적인 성격을 갖는다.

이렇게 한지에 바탕 작업을 하는 것은 마치 무속인이 굿을 하는 것처럼 작가에게는 필연적인 행위로서 주술적인 의미를 지닌다. 서윤희가 “각종 재료를 우려 종이를 단련시키는 과정은 안 하면 몸이 아플 정도로 꼭 해야 하는 운명과 같은 것으로, 나쁜 기운을 없애려는 굿과 도 같다”고 말한 것처럼 종이에 자신의 신체와 자연의 흔적을 투영하는 쉽지 않은 작업 과정에는 자신과 세상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제의(祭儀)행위와도 같은 노력이 깃들어있다. 영상 <기억의 간격_벌랏마을>(2015-2017)은 작가가 수년간 숙성시킨 약재들을 염료로 사용하여 한지에 짚과 마른 갈대의 흔적을 남기는 과정을 기록적으로 촬영한 작품으로, 대형 한지 위를 온몸으로 오가는 작가의 몸짓을 여실히 볼 수 있다. 줄곧 은은하고 고요한 그의 평면 회화 작품 뒤에 숨겨졌던 거칠고 고단한 일련의 과정은 그 자체로 제의와 정화의 의미를 갖는 신체 미술 작품이 된다.

또 다른 영상 작품 <기억의 간격_베네치아>(2015-2017)는 특정 지역의 자연 속에서 이루어진 퍼포먼스와 같은 작품으로 이번 전시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영상 속에서 작가는 파도치는 바다에 들어가서 한지에 바닷물과 염료의 흔적을 남기는데, 이후 이 한지 위에 작가가 미리 모래에 심어서 바닷물을 흡수한 닥나무와 해초, 통발 등을 얹어 또 한 번의 얼룩을 만든다. 결과적으로 한지 위에 남는 형상은 바다와 각종 자연물, 작가의 신체의 자취이자 시간의 기록이 된다. 특히 청주 지역의 닥나무에 베니스 바다의 흔적을 내고, 그 흔적을 다시 한지 위에 남김으로써 궁극적으로 한지 위에는 복잡하게 중첩되고 변형된 시․공간이 형성된다. 이는 장례와 제사를 통해 망자의 영혼이 치유되어 내세로 갈 것을 믿는 것처럼, 제물처럼 놓인 자연물들이 썩어서 얼룩진 한지가 기억이 새롭게 머무는 곳이 되기를 기원하는 것으로도 생각해볼 수 있다. 거친 바람과 물결을 대면하며 하얀 한지를 다루는 작가의 모습은 하얀 모시 적삼을 휘날리며 한풀이 춤을 추는 사람처럼 엄숙하고 진지하다

서윤희는 이러한 새로운 시․공간을 품은 한지 위에 자신의 기억 속의 인물들을 그려 넣어서, 추상적인 얼룩들을 다양한 장소로 암시한다. 인물의 위치에 따라 공간이 다르게 보이기 때문에 작가는 회화의 마지막 단계에서 인물을 그려 넣는 것에 무척 신중한 편이다. 인물과 공간의 상호관계를 연구하기 위해 <기억의 간격_11,051km 1-5>(2014)에서는 하나의 배경을 제작한 후 여러 장으로 디지털 출력을 하여 같은 배경에 각기 다른 인물과 이미지들을 그려 넣기도 했다. 전통 산수화에서는 인물이 자연 풍경을 장식하기 위해 다소 부수적인 요소로 배치되었다면, 서윤희의 작품에서는 공간의 구조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이다.

작품 속 인물들은 마치 중력이 없는 것처럼 공간을 유영하기도 하며 적절한 공간에 안착해 있기도 하는데, 작품 <기억의 간격_1124>(2007)에서처럼 한 인물만이 의미심장하게 등장하거나 <기억의 간격_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2012)에서처럼 여러 인물들이 행진하는 듯 표현되기도 한다. 작가는 자신의 자화상을 포함하여 가족과 친구 등 친밀한 특정 인물들을 그려 넣기도 하지만,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주변에 있었던 불특정 다수의 인물들을 묘사하는 등 종종 당시의 기억과 분위기를 불러일으키는 인물들을 활용한다. 또한 개인적인 기억 속 인물들이라도 대부분 본래의 맥락이 제거되어 익명으로 나타나기에 보는 이들은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투영해 볼 수 있다.

작가는 행복했던 일상을 잔잔하게 표현하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가슴에 새겨진 그리움과 아픈 기억들을 보듬고 치유하기 위해 기억 속 인물들을 다룬다. 서윤희가 기억과 관련된 작업을 시작하게 된 것도 사정상 타국에 두고 온 아이들에 대한 깊은 그리움 때문이었는데, 작품 <기억의 간격_108>(2007)에서는 교복을 입은 또래의 아이들로 암시적으로 표현했고, <기억의 간격_1124>에서는 딸의 뒷모습을, <기억의 간격_0180>(2007)에서는 딸과 손을 잡고 있는 자신을 직접적으로 나타내기도 했다. 한편 <기억의 간격_반야용선도(般若龍船圖)>(2017)와 같은 작품에서는 자신에게 큰 상처를 준 사람들을 그려내는데, 아미타불이 극락으로 중생들을 데려가는 <반야용선도>를 현대적으로 차용하여 극락으로 가는 수레에 아픔을 준 사람들을 태우는 마음의 여유를 보인다. 서윤희는 작품 속에서 단순히 기억을 재현하고 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지난 시간의 기쁨과 고통 등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화해와 치유의 메시지를 새기는 것으로 보인다.

극락을 비교적 직접적인 종교의 맥락에서 표현한 위의 작품 외에도 작가의 여러 작품들에서는 현실의 시공간과는 차이가 있는, 초월적인 세계가 암시된다. 그는 최근 불교와 불화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데, 불교의 요소들 중 극락이나 자비, 해탈과 같은 삶과 깊숙이 연관된 내용들이 기억에 관한 작가만의 오랜 철학과 자연스럽게 맞물려서 종종 작품으로 표현된다. 과거에서 과감하게 도려내진 인물들이 복잡했던 삶의 시간들을 고요하게 지워버린 채 한가롭게 부유하는 모습은, 마치 극락세계처럼 욕심도 아픔도 없는 공간을 상기시킨다. 기억을 전혀 다른 시․공간에 배치함으로써 과거의 시간에서 완전히 떠나보내는 일종의 애도 작업은 현재의 경험 속에서 끊임없이 밀려오는 새로운 기억의 단편들을 받아들이고 삶을 이어가기 위한 서윤희만의 기억의 정화작업이다.

그의 작품에서 얼룩들은 그 자체로 자연의 흔적인 동시에 그 형상이 강이나 산 등의 자연 풍경을 연상시키는 경우가 많다. 인물들은 작품 <망중유한(忙中有閑) Ⅲ>(2016)에서 볼 수 있듯 깊은 물속에서 여유 있게 수영하는 등 자연의 공간과 호흡하고 즐기는 장면들이 많은데, 이는 작가가 자연이 인간을 치유하고 회복시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가 자연의 재료를 고수하며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과 변화를 작품에 반영하는 것에도 이러한 이유가 있다. 하나의 색을 내기 위해 먼 곳을 이동하면서 자연의 재료를 채취하는 것과 천연 염료를 만들 때 각 지역의 온도와 습도, 심지어 바람의 세기까지 고려하여 자연물을 다루는 수고로운 과정에서, 우리는 자연에 순응하고 배워가며 삶의 상처를 위로하고자 하는 그의 신념을 엿볼 수 있다.

최근 서윤희는 언제나 작품의 마지막 단계에 그리던 인물들을 생략하고, 종종 자연의 흔적이 강렬하게 남은 배경만으로 작품을 완성한다. 신작 <기억의 간격_홍연(紅煙)>(2017)에서는 웅장한 붉은 자연의 힘을 대형 화면으로 담았고, <기억의 간격_비망(秘望)>(2017)에서는 마른 나무의 자취를 고스란히 볼 수 있도록 그 형상만을 강조했다. 작가는 이러한 작품들을 통해 자연의 숭고함과 그 깊이를 그대로 대면할 수 있도록 하는데, 여기서의 인간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자연과 동화되어 존재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는 그의 작품이 작은 개인의 기억과 인물에 대한 관심에서 우주적인 공간과 세상의 치유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유한한 시간을 사는 인간이 세속의 껍질들을 벗고 궁극적으로 자연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조금씩 삶과 기억을 내려놓는 과정들이 작품 속에서 잔잔하게 암시된다.

 

서윤희는 자신만의 조제법으로 온갖 약초들을 끓여내고 상처 난 기억과 돌아갈 수 없는 그리운 기억에 끼얹어 이 모든 시간들을 위로한다. 오랜 시간 기억의 순간들을 성찰해 온 수행자와도 같은 그의 작업의 여정은, 기억 속 감정과 욕심, 아픔을 내려놓고 비움으로써 현재를 살아가기 위한 과정이다. 연약한 한지는 삶의 모진 시간들을 모두 견디고 단단해진 어머니의 손처럼, 작가의 인내로 더 질겨지고 강해져 아름다운 문양들을 품는다. 서윤희가 만든 세계 속에서 우리의 삶은 사라지지 않고 무한히 확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