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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ning 2023. 9. 4(월) 3PM
Docent 매주 수요일 2PM | 주말 예약제, 공휴일 휴무
서울시 강남구 압구정로416. B2F 더트리니티플레이스 | T.02-6949-4884
서윤희(徐侖熙, 1968-) 작가의 회화세계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열린 비밀(the open secret)’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혹은 ‘열린 비의(open mystery)’라고 부를 수도 있다. 이 말은 원래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가 사용했던 말이다(offenes Geheimnis). 괴테는 “우리는 밤하늘에 빛나는 별을 기뻐할 수는 있을지언정 그 별빛을 욕망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서윤희 작가는 밤하늘의 별로 상징되는 총체적 자연의 모든 시간을 화폭에 담는다. 자연 속에 인간의 욕망이 투여될 수 없다. 투여되어서는 안 된다. 자연의 시간은 사람의 시간과 다를 뿐만 아니라 존재의 목적도 다르기 때문이다. 자연은 끊임없이 낳고 낳을 뿐이다. 이를 “천지생물지심(天地生物之心)”이라 한다. 서윤희 작가는 자연의 위대한 마음을 화폭에 담는다. 그리고 이 마음으로부터 유리되어 무감각하게 살아가는 사람의 마음과 사람의 시간을 대비시킨다.
서윤희 작가가 해안을 돌며 바다와 이야기하고(면천을 바다에 적시고), 식물과 대화하며 식물의 존재의미를 생각하며(염료를 일정만큼 채취하고), 대지의 여신을 불러 이야기하여(흙을 얻어) 햇빛과 공기와 불과 물의 꿈을 화폭에 드러낸다. 완성한 한지나 면천의 표면에는 자연의 영원한 목적과 웅대한 의미가 녹아있다. 무려 천 년을 간다는 한지에 억겁의 시간이 녹아있다. 억겁의 시간뿐만 아니다. 우리의 인지능력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무수한 인연의 생멸과정이 함축되어 있다. 더욱이 지난하고 절실한 과정을 통해 얻은 위대한 자연의 이미지에 미약한 인간의 삶이 대비되어 묘사된다. 서윤희 작가의 작업은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니다. 대지의 여신의 얼굴을 그린 아주 정밀한 초상화인 동시에 억겁의 시간과 인연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위대한 추상회화이기도 하다.
인간은 자의식(self-consciousness)으로 세계와 자기를 본다. 자의식은 타인과 자기를 비교하는 의식이다. 사물의 가치와 쓰임새를 재는 의식이다. 외부를 바라보는 의식이다. 따라서 진정한 자아를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세계를 있는 그대로(as-it-is) 보지 못한다. 내가 진정으로 나를 볼 수 있으려면 자의식이 사라져야 한다. 자의식은 여러 경로나 사건의 계기로 작아지거나 달래지거나 사라질 수 있다. 이를 선사(禪師)들은 무아(無我)라고 부르고 장자(莊子)는 “오상아(吾喪我).”라고 불렀다. 무아를 서구신학으로 번역하면 엑스타시(ecstasy)가 된다. 엑스터시와 같은 말인 법열(法悅)의 시간은 나의 안목이 나의 내부로 향하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되어 세상과 하나가 되는 통합(union) 속에서 솟아나게 된다. 이 특별한 시간 속에서 나의 눈은 도치된다. 이를 도치된 눈(reversed eyes)이라 부른다. 도치된 눈은 신의 눈과도 같다.
서윤희는 자연의 모든 요소, 대지와 물과 바람과 햇빛을 하나의 화면에 응축하여 신이 바라보는 세계를 상징한다. 신(God)과 세계(world), 초월(transcendence)과 내재(immanence)의 상호연관성을 드러낸다. 여기에 인간의 시간과 사건을 대조적으로 묘사한다. 아주 작게 묘사된 인간의 아주 작은 시간과 사건은 전체 화면과 극적으로 대비된다. 이 대비 속에서 우리는 왜소하며 미미한 존재임을 알게 된다. 즉, 우리는 여기서 절대적 부정(absolute negation)이 의미하는 바를 시적으로(poetically) 알게 된다. 서윤희 작가는 이렇듯 절실하고 돈독한 작업 「기억의간격」을 2006년부터 쉬지 않고 진행하고 있으며, 2023년 현재 우리를 놀랍게 해줄 새로운 프로젝트를 향해 웅대한 발걸음의 여정을 내딛고 있다. 이번 전시 MEMORY GAP_SIMIRU는 카그갤러리에서 기획되었다.
이진명, 미술비평‧미학‧동양학